하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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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 day~
하얀나라  2009-03-19 19:11:55





뒷걸음 / 바비킴(드라마 마왕 OST)



“아침부터 사우나 다녀오삼?”
땀을 흘리며 사과같이 익은 얼굴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직원이 한마디 건넨다.
겸연쩍게 “아~네…….”
속으로 이 더운 여름에 사우나는 무슨…….ㅋㅋ
두발로 데이…….11일을 칭하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서 매달 11일은 두발로 데이라 칭하여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먼 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지시였다.
(으흐흐...지난번 두발로 데이~일켔다가 푸른 아재가
남자들은 세발로 데이라고 글카더마는....)

ㅎㅎ
대부분 가까운 주택가에 주차시키고 걸어온 척 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나는 애국자인척…….
그래. 고유가시대에 이참에 애국하는 거야.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차는 무슨…….ㅋㅋ
그런데 아침의 일분은 천금같다  아이 셋 깨우고 아침먹이고 부엌 치우고 전쟁터가 따로없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될리 없지만 그래도
호박 같은 얼굴에  스케치라도 해야 할 텐데
(직장생활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나이들어가면서 대충~맨얼굴로 퍼져보이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이는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로 ㅎㅎㅎ 간단한 변신은 필요하다고...
개떡같은 나름의 철학이 있었던 터라...ㅎㅎㅎ)
35분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 다니려면 적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내가 일어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열대야로 뒤척이며 잠옷이루다 새벽에 단잠을 자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냐고…….
15일 부터는 2부제가 시행된다는데 이참에 운동하는 거지…….
한때 나는 빗속을 헤치고 다닌다거나, 비사이로 막간다거나
그런 별명으로 아주? 날씬? 하였다.ㅋㅋㅋㅋ



지금도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전혀 살찔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라는 표정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적 있었던, 아~옛날이여~가 되었지만
어쩌면 이렇게 마구 먹고 자고 놀고 하다가 백 근에 도달하면
이건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것이 낫지. ㅎㅎ
ㅋㅋ 사십대 이후에는 조금 넉넉해야 후덕해 보이고
경제력도 있어 보이는 거야…….남들이 봐도 먹고 살만하다고 하지…….
순전히 내 식으로 합리적인 위로라고 하지만
수시로 먹는 약기운 때문이라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살찐 이유를 설명하지만...
살과의 전쟁을 하지 않으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걸 잘 알고 있다.
그래. 이참에 더위와 싸우며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거야.
오로지 숨쉬기 운동에만 전념하던 내게는 지옥훈련이 따로 없었지만
이왕 시작하였으니 걍~깡다구라도 부려보자...
이렇게 시작되어 걸어 다닌 지 이주일이 되었다.
몇 번이나 걸어 다닌다고 폼 잡았다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차를 이용했던  과거 경험이 있었고.
지금은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 아닌가?
이런 날씨에 걷는다는 건~어쩜 쥐약 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내심,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첫날, 딸의 예쁜 우산을 들고 모자를 하나 챙기고 걷기 시작하였다.
괜히 짜증스럽고 멀게 느껴졌다.
내가 입은 청바지는 왜 이렇게  더운 건지…….
둘째 날부터는 아예 요즘 유행하는 반바지 밀리터리룩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사무실에서 입을 옷을 하나 챙기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첫날 느끼지 못했던, 주위의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면서  참 나쁜 버릇이 생겼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먼저 양보하다가도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서 나도 턱 버티고 서서
누가 이기나 기선제압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작은 차라고 깔보며 끼어드는 차나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를 발견하면
그냥 입에서 상스러운 언어들이 마구 나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달리다보면 스트레스만 받게 되고 성격만 나빠졌다.
힘들게 느껴졌던 걷기가 한결 수월해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즈음
내 귀에는 매미소리도 들렸다. 아. 그래.
지금 여름엔 이렇게 매미들이 허물을 벗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거지…….
왜 이 소리를 잊고 있었던가?


버려진것들 조차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큰 거구나...


열려진 대문을 배꼼 쳐다보며 안주인의 숨결을 느껴도 보고,
아니, 저 집의 아저씨가 화초에 관심이 많아서 그럴 거야.
맞벌이를 하는 부부일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댁일까?
심심하지 않게 마음대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잘 정돈된 화단, 이름모를 꽃들이 즐비하고
어떤 곳은 작은 텃밭을 만들어 올망졸망 고추며 가지며
여러 가지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곳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아침일 찍 물을 주었는지 햇살에 초롱초롱 빛나는 물방울을 머금은 화초들이 더욱 예뻐 보였다.
“할머니 빨리 오세요. 카랑한 아이의 목소리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쁜 유치원 가방을 메고 할머니 손을 끌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모습도 정겹게 다가왔다.


어느 집에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갑자기 몽실이 머리의 내가 서 있었다.
우리 집 울타리엔 포도넝쿨이 있었는데 할머니께선 늘
막걸리를 걸러 찌그러진 알루미늄 주전자에 담아 포도 잎으로
주둥이를 털어 막으시곤 십리길 논으로 심부름을 시키셨다.
어린 나는, 그 막걸리 맛이 어떤지 자꾸 호기심이 생겼다.
홀짝…….홀짝…….처음으로 술맛을 알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 이런 것이로구나. 내가 잠시 돌아서서 내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여유로움…….
텃밭을 가꾸시는 할아버지도 매일 만나게 되어 눈인사 나누게 되는 즐거움…….


어둠이 내리는 퇴근길에 만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시간의 행복함...



내 앞을 가로질러 가는 연인들을 보며 “아니 이 더운 날씨에 땀띠 나려고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여자는 남자의 목에다 팔을 목도리 만들고…….
나 참…….괜히 부러워서 속으로 볼멘 질투의 시선도 보내게 된다.





시원한 밤공기를 가르며 걸어가는 길, 벤치에 앉은 정겨운 연인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며 참 좋을때다...
괜히 입가에 미소를 흘리게 되고...이런것들이 걸으면서 내가 느끼는 행복 아닐까?
초복이 지나고 칠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세월이 참 빠르다
더위에 지치면서 연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메모리칩에 입력된 로봇처럼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에누리없이 잘도 가는 시간의 노예 같은 느낌의 지난 날들...
갈망도 느낌도 멈춰진 상태로 보내진 많은 시간들,
내 가슴속 인생 노트에 빼곡히 차여져가는 욕심들,
빈 공간없이 채우기에 열중하여 늘상 바쁘게만 살아왔던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더위와 함께 의식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맘속을 비우며 내 영혼에서 울러나오는 맑은 소리를 들으며
내 삶에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나를 채워주는 것들이 무엇일까
집착하며 잃어버린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건 아닌지...반성해 본다.
삶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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